펼쳐본 책들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lim chulwoo 2011. 12. 28. 13:59

지난 가을이었습니다.
간송미술관에서 조선화원전으로 떠들들썩 하던 즈음 마침 일도 없어 아침 출근하듯 서둘러 성북동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3시간씩 줄서서 보는 수고는 면했지만 붐비는 관람객 틈에서 여유로운 감상은 기대하기 어려웠죠. 그렇게 서둘러 한바퀴 돌고 나오니 왠지 아쉬움이 남아 길상사나 돌아 내려갈까 고민하다 우연히 벽에 붙은 혜곡 최순우선생 옛집에서 하는 작은 전시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최순우옛집으로 발길을 옮긴 저는 그 단아하고 소박한 한옥에 첫눈에 반해버렸죠. 혜곡선생의 글은 이미 익숙해서 새로울것이 없었지만 숨결이 담겨있는 옛집에서 다시 만난 책과 사진은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최순우하면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란 말이 당연히 떠오르듯 혜곡선생의 부석사에 대한 예찬은 특별합니다.

이 날 저는 뜻밖에 수확을 얻었는데, 동양화가 이호신의 부석사 그림을 보게 된 것이죠.
멀리 보이는 소백산 줄기가 절묘한 농담으로 너울거리고 이를 호쾌하게 전망하는 가람배치의 묘를 담백하게 담아낸 한 폭의 부석사가 혜곡선생의 예찬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비록 복제품으로 걸려있었지만 그 감동은 가슴 벅차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설레는 마음으로 이호신화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가능하다면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던 중 부석사를 비롯한 사찰을 주제로한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란 책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절판이 되어버려 서점에선 구할 수 없었고 수소문 해보니 다행히 구립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불이 나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한장 한장 넘기면서 소유욕이 불타오르게 되었죠.

'아. 이 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 겠다.'

이 한권의 책 안에는 부석사를 비롯해 거의 모든 사찰의 가람과 산수가 이호신화백의 손을 거쳐 재탄생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로 헌책방과 중고서적을 전전긍긍하다가 마침내 손에 넣게 되었고, 그 기쁨에 얼마간 취해 보고 또 보았습니다. 미쳐 글을 읽을 여유없이 그림에만 빠져있어 읽었다기 보다는 보았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이미 다녀온 사찰은 미쳐 보고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아직 가보지 못한 사찰에선 기대와 상상으로 이미 가람 안에 들어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과의 가을 부석사여행엔 동행하기도 했지요.
아직 가보지 못한 사찰들은 시간 날때마다 한 곳씩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그럴 때 마다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기대합니다.

비교적 깨끗한 책을 구할 수 있어 기쁨이 큽니다. 표지가 있었지만 제거하고 보관중이죠. 보시듯이 진한 황토빛의 기품있는 표지가 흡족합니다.
 

뒤에 보이는 것이 혜곡선생옛집의 '부석사 무량수전' 소도록입니다.
'해들누리'라는 출판사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경주 남산 냉골과 상사바위(화첩), 34×67cm, 1995년

동해구, 66×97cm, 1996년

오봉산 낙산사, 89.5×60cm, 1999년

부석사와 소백산맥, 60×105cm, 1994년

봉황산 부석사1, 155×86cm, 1994년

천축산 불영사, 269×163cm, 1999년

목차와 이호신화백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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