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정리

달력을 사보는 건 어떤지.

lim chulwoo 2011. 12. 17. 02:02
찬바람이 불고 연말이 가까워지자 어디선가 받아 든 새해달력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추위속을 바쁘게 지나는 행인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잠시동안에도 여럿 눈에 띄이는 것을 보니 새해가 코앞에 있어서인지, 유독 유심히 보아서인지는 모르겠다.

어려선 나름 사회활동이 활발한 부모님 덕에 연말쯤엔 어디선가 들어오는 달력이 집안에 차고 넘쳐 맘에 드는 몇가지를 추리고 남은 것들로 근처에 생색내기가 바빴었다.
그러나 요즘 난 주변머리도 변변치 않고 경기도 좋지 않아 새해가 가깝도록 쓸만한 달력하나 손에 들고 들어오는 일이 없다. 좀스럽게 달력하나에 주변머리 운운까지한다고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꼮 그렇지만도 않은것이, 별 것 아니라 생각했다가도 일부러 구하고자하면 아무리 사소한 물건이라도 손에 넣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더우기 달력이나 시계처럼 시간을 표현하는 오브제에 특별한 애착이 있는 나로선 맘에 드는 물건을 만나기가 우선 쉽지 않고 또 가끔 눈에 들어오는 물건을 만나게 되더라도 이미 배포시기를 한참 지난 후거나 더 이상 구할 방법이 없어져 허탕치기가 예사다. 또 적지 않은 나이에 얼굴 두껍게 공짜달력 하나 주십사하고 넉살좋게 들러 붙을만한 배짱도 없는 위인이다 보니 언제나 맘에 드는 물건은 남의 떡이었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 구차한 마음에 제값주고 맘에 드는 달력을 사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우선 주위반응들이 신통치 않은데 대부분 달력은 어디선가 얻어쓰는것이 통념이어서 값이 얼마건 달력을 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사치스러운 행동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년 전부터 꿋꿋하게 달력을 사고 보니 나름 만족스럽다.

우선 관계도 없고 이유도 없는 광고나 상호가 없어 좋다. 1년내 어쩔 수 없이 항상 쳐다봐줘야 하는 건 의식하기 시작하면 상당히 불편한 사실이다.
또 내가 원하는 물건을 적당한 가격에 당당히 구입한다는 만족감도 제법 있는데 달력이란 것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공짜라는 통념만 버리면 충분히 가격을 치룰 만한 가치가 있고 더불어 좋아하는 작가의 달력과 한해를 함께 하는 기쁨은 기대 이상으로 크다.

<사진출처 : http://shop.mokpan.com/>


이제는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달력과 다이어리를 정성스레 고르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 되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해 놓아야 편안한 새해를 맞을 수 있으니 정초에 부지런 떨며 해돋이 마중도 못하는 게으른 몸뚱이로선 이보다 정성스러울 수는 없을거다.

한해동안 동거동락을 함께 할 말없는 친구를 위한 작은 사치를 권하는 바이다.